딤창

‘진주보건대학교’ 브랜드의 탄생

1981년 10월 26일. 이 날 우리 대학은 당시 보건계열 증 과 현황을 반영해 ‘진주간호보건전문대학’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후 강산이 한 번은 더 바뀌며, 우리 대학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관광중국어통역과에서 사무자 동화과에 이르기까지 여러 비보건계열 학과들이 들어서 며, ‘간호’와 ‘보건’만으로 포괄하기엔 우리 대학의 성격 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첫째로 기존 이름으로는 종합 전문대 성격으로 변모하고 있는 우리 대학의 현재를 그대로 담아낼 수 없다는 얘기 였다. 또 현실적으로 보아도 ‘진주간호보건전문대학’이 라는 교명으로는 그에 포함되지 않는 학과들에 대한 이 미지 제고나 대외 지명도 향상을 기대할 수 없고, 이러한 약점들은 향후 학생들의 취업과정에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첫 시도는 1994년에 이뤄졌다. 이해 10월17일학과장회의를거쳐학 생들의여론수렴을위한‘교명제 안지’를 학생과에 비치했다. 그러나 변경명칭에대한합의점을찾지못 한채교육부가정한기한을넘기고 말았고, 자연스럽게 교명변경 계획 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버렸다.

사그라지던불씨를다시살린건교 육부였다. 1997년에 들어 정부는 고 등교육법과 동법 시행령의 개정을 추진하며, 대학명칭 자율사용의 근 거를법조항에삽입했다.이에우 리대학역시겨울잠에들었던교 명변경추진사업에다시한번불 을 붙였고, 1997년 10월부터 12월까 지 학교법인ᆞ이사회ᆞ교직원ᆞ재 학생ᆞ동문 등을 대상으로 교명변 경을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약 두 달에 걸쳐 폭 넓게 진행된 이 설 문조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이결과에따라당초점찍은새로운 이름은 ‘진주대학’이었다. 그러나 교 육부에 의해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진주시에 적을 두고 있던 진주산업 대역시같은이름으로변경신청을 해왔던 것이다. 당시 지침에 따르 면2개이상대학이같은교명을신 청할경우협의를통해조정을해야 했고, 그런 과정을 거쳐서도 조정이 성립되지 않을 시에는 신청학교 모 두그이름을사용할수없었다. 이에 우리 대학은 진주보건인 전체 의 2순위 요망이었던 ‘진주보건대 학’을 선택해 재신청 절차를 진행했 다.그결과신청안그대로교명을 인가받아 1998년 10월 15일, 대망의 선포식을 가질 수 있었다.

이처럼 우여곡절을 거쳐 ‘진주보건 대학교’ 브랜드의 시원을 열었다. 교명변경의 장점이 여기저기에서 확인됐다. 우선 대학 이름에서 ‘전 문’이 빠짐에 따라 재학생들이 4년 제 대학생들에게 은연중 품고 있던 상대적 박탈감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신관 증축사업과 교명변 경이 동시에 이뤄짐에 따라 시너지 효과도 대단했다. 성장 가능성에 대 한긍정적기운이교내에감돌기시 작했다. 이에 우리 대학 운영진은 교명변경을 새로운 출발의 계기로 삼아,한단계도약을위한전력투 구에 드라이브를 걸 수 있었다.

1995학년도 신입생 모집요강으로 보는 진주보건대학교의 변화된 성격

간호계열: 간호과
보건계열: 임상병리과, 치위생과, 치기공과, 보건행정과 사회실무계열: 관광중국어통역과. 관광통역과 공업계열: 사무자동화과

4개 계열, 8개과, 총 880명 모집



교명변경 설문조사 결과

1순위 진주대학
2순위 진주보건대학
3순위 한가람대학

외환위기 격랑 속
전문성 강화

1997년 11월 21일, 당시 임창열 경제부총리는 충격적인 특별 기자회견을 가졌다. IMF를 대상으로 한 자금지원 요청을 공식 결정했다는 내용이었다. 나라 빚이 1500억 달러가 넘는데, 우리가 가진 외화는 40억 달러에도 미치 지 못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결국 그 해 12월, 대한민 국은 국제기관 3곳으로부터 총 350억 달러의 자금을 지 원받았다.
대가가 뒤따랐다. 시작은 일터의 실종이었다. IMF가 요 구하는 가혹한 구조조정이 눈앞에 다가오자 기업들은 당 장 신규채용을 멈춰야 했고, 이에 대졸 예비 취업자들은 사상 최악의 구직난에 시달려야 했다.

외환위기 한파 속에 4년제 대학의 신화는 이처럼 철저히 붕괴되었다. 다만 전문대학들의 사정은 조금 달랐다. 상 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각 기업체마다 생산현장에서 근무 할 전문인력 채용만은 줄이지 않았고, 가장 거센 한파가 몰아친 1998년에도 전국 전문대 취업률은 80%를 상회 했다. 그야말로 ‘전문대 전성시대의 개막’이라 평가할 수 있었다. 우리 대학 역시 전문기술인으로서의 역량이 중 요시되는 이러한 사회적 흐름 속에서, 1999학년도 신입 생 모집 결과 4.5 대 1에 이르는 놀라운 경쟁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이 시기 수많은 신입생들을 불러 모 은 주역 중 하나는 1999년 신설된 ' 피부미용과'(현, 뷰티디자인과)였 다. 해당 학과의 수업내용은 헤어, 피부관리, 메이크업 등 세 개 파트 로 나뉘어 구성됐는데 도서관 공간 일부를 개조해 피부미용 실습실을 마련할 정도로 개설 당시 미비한 점 이 많았다. 그러나 생존의 무기를 갖추려는 학생들의 열망만은 대단 했다.이런열정을자양분삼아이 학과는 안정과 성장을 동시에 실현 하며,우리대학이지역을넘어전 국을 무대로 주가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우리 대학이 IMF 체제의 혼란 속에 서도 대표적인 전문인력 양성소로 자리잡는데기여한또하나의주역 이 ‘HACCP 교육원’이었다. 이교육원은식품안정성관리가중 요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던 당시의 추세를 반영해 국내 대학으로선 최초로 설치한 ‘식품위해요소 중점 관리 기준(Hazard Analysis and Critical Control Point, HACCP)’ 교육기관이었다.

제도도입필요성이제기된이래몇 몇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에서 교육 과정을 열었지만 전문성 부족의 한 계를 절감해야 했다. 그런 면에서 20년간 위생사를 배출해온 보건계 열 교육기관인 우리 대학이야말로 맞춤의 적임자였다.

이 분야의 세계적 민간조직인 SGS 와 산학협력 협약을 체결한 건 1999 년 12월이었다. 이어 2000년도부터 학점을 이수하는 정규 교과과정에 이론 및 실무 교과목을 편성하고, 같은해1월부터관련산업체인사 및 보건행정과 졸업생 등을 대상으 로 첫 교육을 실시하며 진주보건대 HACCP 교육원 역사의 첫 페이지 를열었다.이로써우리대학은또 한번영역넓히기에성공하며대표 적인 전문인력 양성기관으로 자리 매김할 수 있었다.

HACCP

원재료 생산에서부터 제조와 가공, 보존과 유통을 거쳐 최종 소비자가 섭취하기까지 각 단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해요소를 규명하고 이를 중점적으로 관리해 식품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위생관리체계

우리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자금지원을 요청하기로 했습니다

학생들이 만족하는 대학

대학은 학과 및 학생의 수에 그 지속 가능성이 달려 있 다. 때문에 우리 대학은 일정한 기준을 넘기기 위해 숨 가쁘게 1990년대의 10년을 보냈고, 이에 성장의 기반이 될 만한 규모 실현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제 두 번째 스 테이지로 넘어가 학생들을 위한 대학으로 거듭나야 할 때였다.

늘어난 학생 수에 걸맞은 외형을 갖추기 위해 또 한 번 의 증축 및 개축 사업에 돌입한 건 1998년 12월이었다. 당시 우리 대학은 증축 면적만 따져도 기존의 약 2배에 달하는 대규모 공사를 계획하고 실행에 들어가, 1999년 3월 모든 건설사업을 마무리 지었다.
이 과정에서 건물을 늘렸을 뿐 아니라 구관(현 성실동) 의 외관과 내부시설 또한 보수하고 확충했다. 외벽의 경 우 새로운 외벽재와 이중유리를 설치함으로써 방음과 보온, 단열효과를 크게 높였다. 또 내부 전체 도색작업 과 계단공사를 진행했고, 기존 벽면을 뚫어 쾌적한 휴게 공간을 확보했으며, 옥상에는 휴게실을 꾸미기도 했다.

그러나 하드웨어 확충과 정비만으 론학생들을위한대학실현에한 발 모자랐다. 이에 2000년에는 대학 생활의적응을돕고각종민원에대 한 종합 상담창구로 기능할 전담조 직을 설치했다. 이해 8월, 학생들에 게대학생활전반에대한안내및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학생서비 스센터’를 개소한 것이다. 당시 구 관2층중앙현관옆학생처내부에 해당센터를설치함에따라특히학 사정보, 학적 처리, 각종 증명발급 업무 등 행정적 민원 업무를 통합 처리할 수 있게 되며 학생들의 편의 를 크게 증진시킬 수 있었다.

한편 하차 위치가 우리 대학 정문 과 거리가 있는데다, 한 번 놓치면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시골버 스’의 불편함도 학생들의 학교생활 을 어렵게 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이러한 불편을 해소해 학교 인근지 역 거주 재학생들에게 편의를 제공 하기 위해 우리 대학은 통학버스를 마련해 2000년도 2학기부터 운행을 시작했다. 첫 운영 당시 운행코스는 통영 세종병원 앞에서 출발해 고성 읍사무소를 거쳐 우리 대학 정문에 도착하는, 1시간 코스였다. 따라서 운행과 동시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 고 있던 인근 고성 및 통영 지역 재 학생들에겐 단비와 같은 버스로 통 하기 시작했다.

이밖에도 2001년 신학기 시작과 동 시에 봉사동 5층 엘리베이터 옆에 보건실을 개설했다. 과거에는 급체 나두통,감기,경미한찰과상등불 시의건강이상을느낀학생들이학 생처를 통해 간단한 상비약을 구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정식으로 보건실이 개설됨에 따라 더욱 적절 한 건강상 처치와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노력에도그간쌓여온학생 들의요구를단번에해소할순없었 다. 그러나 1999년에서 2000년대 초 입에 걸쳐 지속적으로 학생들의 편 의도모를위한조치를취함에따 라학생복지실현을위한기반을다 질수있었다.현재의우리대학이 실현하고 있는 ‘학생들이 만족하는 대학’의 기원으로서, 이때의 노력은 역사적으로 충분히 조명받을 가치 가 있다.

재학생 주거복지 시대 개막

80명의 입학 정원으로 개교한 우리 대학은 개교 초기에 어려운 공부를 밤낮없이 해야 하는 학생들을 위하여 기 숙사를 운영했다. 특히 국가시험을 앞둔 3학년의 경우 에는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하지만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간 호과 외에도 임상병리과를 비롯한 보건계열 학과들이 신 설되고 입학정원이 늘어나게 되면서 기숙사로 제공할 공 간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공부할 강의실이 부족한 지경에 이르렀다. 학교는 우선 기숙사 공간을 교실로 전환하고 1982년부터 교사를 증축하고 신관을 지으면서 학생들의 강의실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1990 년대에 보건계열 외에도 새로운 학과를 신설하고 입학정 원을 늘리게 되면서 1999년도에 이미 학생정원이 2,630 명이 되었다. 이는 현재의 우리 대학 정원보다도 많은 수 준이었고 교육 공간 확충이 우선되는 상황 속에서 기숙 사 신설은 점점 요원해져만 갔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학생들이 늘어 나게 되면서 기숙사가 없어서 생기 는 학생들의 불편이 커져만 갔다. 대학도 이러한 상황을 모르지 않았 기에 2000년에는 학생처 직원들이 직접학교주변하숙집및자취방을 방문하여그집의상태,조건,가격 등을 파악한 후 선별하여 홈페이지 를 통해 학생들에게 하숙방을 직접 알선해주는 사업을 진행했다. 기숙 사가 없어서 겪는 학생들의 불편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한 대학의 궁여지책이었다.

하지만 학생처 직원들이 학생들에 게 하숙집과 자취방을 직접 알선해 주는것은한계가있었고우리대학 은학생들을위한기숙사건물을직 접짓기로했다.기숙사를짓기위 한 설계를 2003년 3월에 시작했으나 기숙사 건축을 위한 대지가 진주시 의 행정업무처리 관계로 그린벨트 해제가 지연되면서 2004년 1월에 진 주시로부터 건축허가를 받아 같은 해기숙사를짓기위한첫삽을뜨 게 되었다.

2005년 8월 17일 준공된 기숙사의 이름은 설립 초기에 학생들이 오로 지공부에만집중할수있도록고민 하고배려했던초대학장정영수박 사의호를따한가람학사로명명했 다. 기숙사는 건축면적 1,056m2(320 평)에 연면적 4,997m2(1,514평)으 로A,B동으로구성되어있었고5 층 건물로 총 214실 400여명을 수용 할수있는건물로지어졌다.기숙 사는 학생들이 최대한 편리하게 이 용하고학업에집중할수있도록각 종편의시설과최신시설을갖출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그 결과 일반실 214실, 장애인실 2실과 층별 휴게 실, 그룹세미나를 할 수 있는 세미 나실, 학생들의 건강을 위한 체육시 설, 세탁실 등을 갖춘 기숙사를 갖 추게 되었다. 학생들은 오래도록 염 원했던 기숙사의 준공을 보며 기뻐 했고 현재까지도 기숙사에 입실하 기 위한 높은 경쟁률을 보이고 있 다. 2005년 8월 한가람 학사의 완성 으로 정영수 박사가 오랫동안 꿈꿔 왔던 재학생을 위한 주거복지 시대 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실효성 있는
산학협력 경로 모색

1997년의 IMF 외환위기의 여파는 2000년에도 이어졌다. 2000년대 사회적 키워드는 ‘구직난’과 ‘청년실업’이었고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관심사는 졸업 후 취업이 되 었다. 미디어에선 많은 기업이 학생들이 졸업 후 현장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무교육의 필요성에 대하여 지적 하였고 이러한 현상은 대학들의 직업 교육과정을 되짚어 보는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를 반영하듯이 2000년엔 취업률이 높은 전문대학의 입학 경쟁률이 4년제 대학 경쟁률을 훌쩍 뛰어넘었으며 취업 을 위해 4년제 대학졸업자가 다시 전문대에 지원하는 사 례도 적지 않게 나타났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우리 대학은 학생들의 학과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법을 고심했다. 우리 대학은 1998년부터 일찍이 학생들이 직접 실무현장에 나가 경험 을 쌓고, 기업의 부족한 인력을 보충하는 주문식 교육을 보건행정과와 국제관광과에서 실시하고 있었다. 주문식 교육을 통하여 특정 기업에서 실무를 익힌 학생들이 교 육을 받던 기업에 최종 취업하는 것으로 교육과 취업의 과정이 연계되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대학은 이러한 주문식 교육을 전체 학과로 확대 운영하 기 위하여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과의 산학협력을 본격적 으로 늘려가기 시작했다.

우리 대학은 2004년 5월 필리핀 르 네상스투어와의 산학협력 체결을 시작으로 전국에 체인을 가지고 있 는 (주)한국미스터피자, (주)풀무원(의 령공장), (주)두산식품BG 같은 대형 외식업체부터 지역 치과, 치과기공 소, 어린이집, 호텔, 요양원 등 개설 학과와 직접적으로 연계될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과 산학협력 을 체결했다. 본격적으로 산학협력 업체를 늘려가던 2004년부터 2005 년까지는 22개의 기업들과 산학협 력을 체결하는 성과를 올렸다. 또 한 2006년 1월부터는 진주보건대학내에 산학협력단을 별도 설치하여 기업 유치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 다. 2004년부터 시작된 산학협력 유 치는 매해 늘어나면서 2022년 현재 1,126건의 국·내외 기업과 산학협력 을 체결하는 결실을 맺었다.

우리 대학은 이렇게 맺은 산학협력 을바탕으로기업이필요로하는기 술 전문성을 강화하여 학생들에게 가르침으로써 학생들이 졸업 후 관 련기업에취업할수있도록노력했 다. 우선 대학에선 교수진과 학생들 에게 기업의 실무현장을 직접 견학
할 기회를 제공하고 기업과의 공동 연구개발을 통해 교육과정을 개편 했다. 또한 기업들이 제공하는 실습 및 인턴쉽 기회를 학생들에게 제공 하여 졸업전에 학생들이 실무를 더 많이체험할수있도록했고이러한 노력을 통하여 대학은 산학협력을 맺은 기업에게 실무에 최적화된 인 재를제공할수있는취업네트워크 를 구축하게 되었다. 비로소 ‘교육- 학습-고용’이 하나로 이어지는 실 효성 있는 산학협력 체계를 갖추게 된 것이었다.

맞춤형 전문인재
집중 육성

사회가 원하는 전문 인재는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 따라 빠르게 변화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산업이 발전하면 서 사회가 원하는 인재상의 모습도 끊임없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빠르게 급변하는 시대적 요구에 발맞추기 위 해 우리 대학은 항상 시대의 흐름에 기민하게 반응하며 사회가 원하는 전문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교육에 대한 다양한 고민과 변화를 시도해왔다.

우리 대학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학과제로 운영되던 일부 학과를 계열제로 전환하고 계열별 세부 전공 과정 을 신설했다. ‘관광통역과’는 ‘국제관광계열’로 변경한 뒤 중국관광, 미주관광, 일본관광 전공으로 구분했으며 ‘사 무자동화과’는 ‘컴퓨터정보기술계열’로 변경한 뒤 E-비 지니스, 멀티미디어, 웹정보처리 전공을 신설하여 세분 화했다. 하지만 이렇게 변경한 계열과 전공은 ‘구직난’과 ‘청년실업’이 대두되던 2000년대 초반에 큰 실효성을 거두지 못했고 학생들의 취업률을 높 이기위해고심하던우리대학은다 시한번대대적인전공개편을시도 하게 된다.

2004년 우리 대학은 ‘컴퓨터정보기 술계열’을 ‘사무정보과’로 변경하고 하위전공을모두폐지한뒤2005 년 다시 ‘사무정보계열’로 변경하였 고 사회적으로 급부상하고 있던 ‘사 회복지 전공’을 포함해 ‘회계행정 전공’, ‘의약사무 전공’을 신설했다. ‘국제관광계열’ 또한 전공을 모두 폐 지하지는 않았으나 2005년부터 전 공을 대폭 변경하면서 변화를 시도 했다. 이와 같은 변화는 2004년에서 2005년 사이에 우리 대학이 기업들 과 활발히 산학협약을 체결하면서 협약한 기업들의 특성에 맞춰 특화 된전공과맞춤교육과정을새로개 편한 것에 따른 것이다.

특히 ‘국제관광계열’ 전공에는 기업 특화된 이색전공들이 많이 신설되 었는데 2005년 (주)한국미스터피자와 산학협약 체결 후 다음해에 신설된 ‘외식산업 미스터피자 전공’이 대표 적이었다. 우리 대학은 산학협력 체 결후학과과정중에(주)한국미스터 피자의 본사인 MPK그룹 임직원의 실무강의를 마련하고 매장에서 현 장실습을 실시해 학생들의 업무 적
응력을 높이려고 했다. 기업체 매장 에 방문하여 실습하는 교육과정이 늘어나다보니 우리 대학은 2007년 3 월부터 인턴십 과정을 수업으로 편 성하고 실습하는 기간에 대한 이수 학점을 이수해주는 것으로 학칙을 변경했다.
이러한 특화된 맞춤 교육과정들은 학생들이 졸업과 동시에 바로 현 장 투입이 가능한 맞춤형 전문인재 를집중적으로육성할수있는이유 가되었고전문가수준의졸업생배 출은전국최고수준의높은취업률 달성으로 이어졌다.

2002-2016 학과 및 계열 변경흐름도

변경년도 2002년 2005년 2006년 2009년
학과/계열 “관광통역과” “국제관광계열”로 변경 “국제관광계열” “국제관광계열” “국제관광계열” “관광계열”로 변경
전공 중국관광 전공 일본관광 전공 미주관광 전공 중국관광 전공 공항면세 전공 여행항공운항 전공 호텔리어 전공 중국비지니스 전공 공항면세 전공 해외가이드 전공 호텔리어 전공 외식산업 미스터피자 전공 의료관광중국어 전공 관광면세일본어 전공 항공스튜어디스 전공 호텔리어 전공 외식산업 미스터피자 전공
변경년도 “2002년 2005년 2006년 2016년
학과/계열 “사무자동화과” “컴퓨터정보기술계열”로 변경 “사무정보과” “사무정보계열”로 변경 “사무정보계열” “의약복지정보계열”로 변경 “의약복지정보계열” “복지행정 계열”로 변경
전공 E-비지니스 전공 멀티미디어 전공 웹정보처리 전공 사회복지 전공 회계행정 전공 의약사무 전공 사회복지 전공 사무정보 전공 의약정보 전공 아동복지 전공 사회복지 전공 사무행정 전공 아동복지 전공
* 2022년 진주보건대학교 대학요람 참고

영글어가는 평생 교육의 꿈

1997년 12월 13일 고등교육법이 제정되었다. 교육의 패 러다임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학점은행제가 시행에 들어감에 따라 대학 입학자가 아닐지라도, 누구 나 고등교육기관으로 인정된 곳에서 수업만 받으면 이 결과를 은행예금처럼 적립해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영글어가는 평생 교육의 꿈에 진주보건대가 동참을 결정 한 건 2006년이었다. 이해 3월 들어 우리 대학은 평생교 육원을 설립하고 총 185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한 보 늦은 출발이었다. 국립경상대학교, 진주교육대학교, 경 남과학기술대학교 등 다른 대학들이 법 설립 초기부터 평생교육 과정을 개설한 데 비해 평생교육 부문에서 진 주보건대학의 출발은 몇 년은 뒤처져 있었다.

그러나 꼴찌의 반란이 무서웠다. 평 생교육원설립이후얼마지나지않 아남다른행보를보이며의미있는 차별화의 길을 걸어 나갔다. 주변 다른 대학들이 취미·인문·민간자격 증등교양영역의과목에머물렀다 면,우리대학은전문기술인재양 성 노하우를 평생 교육과정 기획에 적절히 활용하기 시작했다. 2007년 을 출발점으로 간호학사(간호학전 공), 보건학사(임상병리학전공, 치 위생학전공, 치기공학전공), 행정 학사(사회복지학전공) 등의 수업을 평생교육원에 개설하고 이를 학점 은행제와 연결해 학위 과정으로 운 영해 나간 것이다.

이밖에 학위가 주어지지 않는 일반 과정에서도 학과와의 연계를 적극 적으로 실험하며 임플란트 코디네 이터 과정, 미용기능장 자격과정, 국외여행인솔자양성과정등을개 설하고우리대학의전문교수인력 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운영이 쉽지는 않았다. 특히 학점은 행제가 수강자 사전보고에서 평가인 정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지침을 준 수해야 하고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까다로운 관리 감독을 받는다는 점 을 감안하면, 짊어진 책임의 무게가 적지않았다.이에우리대학평생교 육원 담당자들은 다른 대학 종사자 들에게 운영 노하우를 구하기 위해 전국에 걸친 발품을 마다하지 않았 고,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오래지 않 아 흥행가도를 구가할 수 있었다.

평생교육원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과목은 ‘초중등 교사를 위한 심폐소생술’ 과정이었다. 2017 년 부터 갑작스럽게 응급처치에 관 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라는 학교보 건법의개정에따라각급학교의일 반교사들은 1년마다 의무적으로 1 회의 응급처치교육을 받아야 했으 나, 학교들의 사정은 아직 막막할 때였다. 이러한 사정을 간파한 우리 대학에서는 발 빠르게 심폐소생술 을 비롯한 응급처치 교육과정을 개 설했다.그결과국가차원의보건 교육 강화에 부응하고 지역 학교들 의 수요를 신속히 흡수하며 평생교 육원의위상을크게높여나갈수 있었다.

국민이 언제나, 어디에서든
양질의 고등교육을
받을수있는길이열렸다.

아직도 기억하는 장면이 있어요.
사회복지사 2급과정에 사회복지 현장실습 교과목이 개설됐는데,
본부동 로비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룬 거죠.
우리 대학의 정원이 40명 정도인데 선착순이라 하니
수강을 원하시는 분들이 새벽부터 줄을 서셨어요.
본인과 배우자의 2개 원서를 들고 줄을 섰다가
40번째 수강생이 계속 수를 세는 바람에 본인 원서만 접수하셨죠.
그 정도로 우리 대학 평생교육원의 학점은행제 과목들이 인기가 정말 좋았습니다.

- 기획처 강경애 선생님

전문대학 교육역량강화사업 선정

2009년 우리 대학은 교육과학기술부가 주관하는 전문대 학 교육역량강화사업 평가에서 우수대학으로 선정됐다. 전문대학 교육역량강화사업은 대학의 취업률(25%), 교 육비 환원률(20%), 재학생 충원율(15%), 장학금 지급률 (12%), 산학협력 성과지수(10%), 교원확보율(10%) 등 대학을 평가하는 8가지 정량지표를 바탕으로 교육여건 과 성과가 우수한 대학을 선정하고 교육역량강화 지원금 을 지원해주는 국비 사업이다. 대학 내부 자체 평가가 아 닌 교육부가 전국 대학을 모두 평가하여 선정하는 만큼 지역 고등직업교육기관으로써 우리 대학의 경쟁력을 국 가로부터 확인받은 것이다. 우리 대학은 2009년 선정에 그치지 않고 2011년부터 2013년에 걸쳐 3년 연속으로 교 육역량강화사업에 선정됐다.

전문대학 교육역량강화사업 선정과 더불어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우리 대학의 간호학부는 3년 연속 학과 브랜 드사업으로 선정됐다. 전문대학 학과 브랜드 사업은 교 육과학기술부가 해당년도 ‘교육역량강화사업 우수대학’ 으로 선정된 대학에 한해 선별적으로 선정하는데 전문대 학별로 경쟁력 있는 분야를 ‘대학의 대표 브랜드’로 집중 육성하고자 하는 사업이다. 대학 내 강점과 역량을 가진 학과를 집중하여 육성함으로써 대학을 특성화(브랜드 화)해 전문대학의 직업교육 경쟁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우리 대학 간호학부는 이러한 학과 브랜드 사업 에 3년 연속 선정되면서 진주보건대학의 가장 경쟁력 있 는 학과이면서 명실상부 경남지역 대표 간호학부로 우뚝 서게 되었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전문대학 교육역량강화사업과 학과브랜드사 업(간호학부)이 선정되면서 우리 대학은 4년간 약 93억 3천만원 국비 지원금을 받게 되었다. 우리 대학 은 국비지원금을 교육역량강화사업 취지에 맞게 ‘핵심역량을 갖춘 월드 클래스 보건 전문인 양성’을 목표로 삼고 역량강화 프로그램의 세부사 업내용을매년새롭게수립하고학 생과대학의역량을강화할수있는 지원사업들을 추진했다.

우선 대학은 정부지원금으로 학생 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교육인 프라를 강화하기 위해 실험실습 기 자재 및 실습실 환경을 개선했다. 기초학습 능력강화 프로그램으로 의사소통, 창의적 문제해결, 대인관
계스킬향상등전문지식을공부 하느라자칫학생들이놓칠수있는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학기마다 특 강을 개최하기도 했으며 취업에 도 움이 되는 MOS2007 자격증취득과 정특강,글로벌인재육성의기초 가되는영어능력향상을위한영 어캠프개최등대학안에서학생들 이참여할수있는역량강화프로 그램을 신설하여 추진했다. 또한 산 업체 견학의 기회도 대폭 확대했는 데국내견학뿐만아니라해외현장 실습 지원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전공관련 현장실습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전공을 해외에서 활용할 수 있는 한가람 해외봉사 활동도 꾸준 히 지원하는 등 다방면에서 학생들 의역량을강화시킬수있는프로그 램들을 운영했다.

세상에 따뜻함을 전하는 동아리
‘건강보감’

할머니가 손주 같아 보이는 앳된 얼굴의 학생 손을 꼭 잡 고 감사의 말을 건넨다. 학생은 할머니를 마주 보며 다음 주에 금방 또 본다며 아쉬워하는 할머니 손을 어루만진 다. 할머니와 손주의 일상적인 작별인사 같은 이 풍경은 노인의 날을 맞이하여 경남 산청 한센병원 노인요양시설 성심원 어르신들을 찾아온 진주보건대학교 봉사동아리 ‘건강보감’ 학생들과의 작별인사 모습이었다. 어르신들 을 위한 효도잔치를 준비해온 학생들의 손을 잡고 아쉬 운 인사를 건네는 할머니의 눈가에는 한센 병력인에 대 한 오해와 대중교통으로는 찾아오기 불편한 지역임에도 찾아와 준 학생들에 대한 고마움이 가득했다.

2002년 4월에 진주보건대학교 간호 학부를 중심으로 시작된 봉사동아 리 ‘건강보감’은 2004년 당시 경남 간호사회에서 3년마다 경남 복지시 설에서 여는 효도잔치에 참여해 처 음 성심원을 방문했다. 일회성으로 끝날 수 있는 행사였지만 학생들을 보고 좋아하시는 어르신들의 모습 을 보며 봉사활동에 참여했던 학생 들이 자체적으로 매년 찾아뵙자고 해서시작하게된것이어느새우 리 대학의 전통이 되어 현재까지 이 어지고 있다. 2019년의 코로나 바이 러스의 여파로 몇 년간 방문이 어려 워지긴 했지만 ‘건강보감’의 학생들 은 2005년부터 2019년까지 15년간 지속적으로 성심원을 찾아 봉사활 동을 이어나갔다. 노인의 날을 맞아 매년 효도잔치를 주최할 뿐만 아니 라 학기별로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주말마다 찾아뵙는 봉사활동도 이 어가고 있다. 학생들은 사비로 마사 지 자격을 취득한 뒤 성심원을 찾아 와 한센병에 대한 잘못된 오해로 자 칫 꺼려할 수 있는 한센병 환우분께 직접 마사지 봉사를 이어나가기도 했다.

‘건강보감’은 성심원 봉사활동뿐만 아니라 스스로 장기기증 서약을 하 거나 홍보하는 ‘사랑의 장기기증 캠 페인’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2005년 에는 동아리 내부에서 시작된 장기 기증 운동이 교내 학생들의 뜨거운 호응을받아일주일만에전체재학 생의 13%에 이르는 340여명의 장기 기증 서약서를 받는 성과를 거두기 도했다.이렇게받은서약서는모 두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 경남센터
인 경상대병원에 전달했으며 이러 한 활동의 결과로 ‘건강보감’은 2006 년 MBC사회봉사대상 우수상, 2011 년제23회아산상청년봉사상을수 상하기도 했다. 수상 상금은 각각 대한간호협회를 통하여 비전호프 어린이 화상 환자 후원회와 에티오 피아의 착취당하는 소녀들을 후원 하기 위해 ‘염소 사주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삼소회에 기부금으로 다시 전달됐다.

매번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
아니에요. 어르신
다음주에또뵈어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사지를 해드리면 참 좋아하세요.
아무래도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시다 보니
체온을 나누고 정을 나누는 것에 대해 반가워하시는 것 같아요.
저희가 오면 반가워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저도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 ‘건강보감’ 07학번 학생 인터뷰 중

참인성을 갖춘
전문인재 육성

우리 대학은 그동안 학생들이 높은 실무능력을 갖춘 전 문인력으로 사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전 문 교육기관으로 성장해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항상 경계해왔던 것은 학생들에게 전문적인 지식을 가르치는 것에 편중되어 인성 교육을 등한시하는 것이었다. 설립 초기부터 우리 대학의 목표는 단순히 전문지식인을 양성 하는 것이 아닌 참인성을 갖춘 전문인재를 육성하는 것 이었다. 개교 당시부터 설립자 정영수 박사는 학생들이 간호 관련 공부뿐 아니라 사회를 보는 안목과 시각을 넓 히길 바라는 마음에서 당시 진주를 방문하는 저명한 인 사에게 직접 학생들을 위한 특강을 해주기를 청하기도 했다. 그 결과 당시 보사부(보건부)장관이나 국회의원, WHO(세계보건기구) 간사 등 사회 요직에 있던 많은 인 사들이 학생들을 위하여 기꺼이 특강을 진행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대학은 학생들의 인성 교육을 일회적인 특 강이 아닌 지속적이고 전문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체계화하기 시작했 다. 1996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라는 명칭으로 1박 2일간 약 300명 의 학생들에게 인간관계교육(사회 성향상훈련)을 기본으로 하는 인성 교육을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시 간이 지남에 따라 인간관계교육 외 에도 예절교육, 전통문화교육, 사회 봉사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로 추가하였고 이러한 인성교육을 정 규 교육과정에 포함시켜 학생들이 인성교육을 받으며 학점도 이수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1999년에는 그 동안 300명 규모의 단체교육으로 실 시하던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각 학 과별 인성교육으로 전환하여 내실 을 다졌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우리 대학은 기존에 인성교육 커리 큘럼에 다도, 매너교육, 학교생활지 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가했다.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프로그램에 대하여 고 민하면서 변화와 보완을 모색했다.

2005년 처음 시행된 ‘칭찬·독서 릴 레이운동’은우리대학의이런고 민의결과라고할수있다.이운동 은각학과별로학생5명을1조로 묶어 조장이 먼저 교양도서를 선정 하고읽은뒤다음주자에게칭찬과 함께 도서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 행된다. 모든 주자가 선정도서를 다 읽으면 조원들은 개인별 독서 소감 문을 제출하고 선정도서에 대한 토 론 및 의견을 교환한다. ‘칭찬·독서 릴레이 운동’은 조별로 제출하는 소 감문과 토론 내용을 검토해 최우수 상, 우수상, 장려상, 행운상 등을 뽑 아 상금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운영 했다. ‘칭찬·독서 릴레이 운동’에 참 여한 학생들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참여한 학생의 90%가 이 프로그램 에 참여함으로써 독서의 유익함을 깨닫고 서로에게 건네는 칭찬을 통 해 인간관계에 도움을 받았다고 답했다. ‘칭찬·독서 릴레이 운동’은 올 바른 인성함양과 독서문화 증진이 라는두마리토끼를모두잡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어느새 우리 대학의 전통으로 자리잡아 매년 시행되고 있다. ‘칭찬·독서 릴레이 운동’이 학 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자 2012 년 ‘자아성장 수기 공모전’ 프로그램 을 추가로 진행했다. 학생들이 독서 를통해성장하고변화한수기를작 성해 봄으로써 자아의 성장과 독서 습관을 길러 책읽는 문화를 정착시 키기 위함이었다. 공모전은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고 긍정적인 소감을 밝힘으로써 좋은 결실을 맺 고 있다.

설립자 정영수 박사의 바람대로 학 생들은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를 보는 안목과 시각을 넓히고 참 인성을 갖춘 전문인재로 자라나 고 있었다.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들이
나의삶에작은긍정적변화를가져온것같다.
좋은친구를만나듯나에게벗이되는책이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한다.

- 2014년 ‘자아성장 수기 공모전’ 금상 치위생과 박혜민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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